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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게이츠가 또 다른 대규모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을 언급할 때마다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이후에는 그의 발언을 두고 음모론적인 해석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빌 게이츠가 특정 시점에 반드시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한다고 예언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와 감염병의 특성을 고려하면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에 가깝다.

사실 이런 주장은 그렇게 특별하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전염병은 끊임없이 등장해 왔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고, 20세기 초에는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이외에도 HIV/AIDS, 사스(SARS), 메르스(MERS), 에볼라 등 인류에게 큰 영향을 준 감염병은 수없이 많았다. 코로나19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음모론으로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언제 발생할지, 어떤 바이러스가 원인이 될지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빌 게이츠가 말하는 것은 일종의 확률과 위험 관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감염병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는데 앞으로는 절대로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언젠가는 또 다른 감염병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현실적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팬데믹이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예방과 대비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빌 게이츠와 관련해서는 또 하나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그가 의료 관련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했고, 이것이 코로나 사태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식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상당히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부유한 투자자들이나 대형 투자기관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기업이나 산업에만 돈을 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자산을 분산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빌 게이츠와 관련된 투자 역시 의료·바이오 분야만 있는 것이 아니며, 특정 의료 관련 주식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코로나19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투자 규모를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얼마를 샀다"는 금액만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자산과 포트폴리오에서 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함께 봐야 한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사람이 여러 산업에 분산 투자하는 과정에서 의료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결국 의료주를 보유했다는 사실과 코로나19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음 팬데믹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코로나19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대규모 집회 제한,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와 같은 감염 확산 방지 조치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사람들이 빠르게 이해하고 따를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 감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신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기존 백신 개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보급됐다. 물론 "연구를 전혀 하지 않고 급하게 만든 백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임상시험과 안전성 평가가 진행됐고, 백신이 사용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안전성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백신 개발 과정과 비교하면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및 도입 과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대부분의 이상반응은 경미하거나 일시적이었지만, 매우 드물게 심근염·심낭염과 같은 심각한 이상반응도 확인됐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게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신이 생긴 것도 현실적인 문제다.

따라서 만약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한다면 정부와 의료기관이 단순히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백신의 효과뿐만 아니라 개발 과정, 임상시험 기간, 부작용 가능성, 위험 대비 이익 등에 대해서도 훨씬 민감하게 바라보게 됐다.

결국 다음 팬데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에게 예방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려면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하고, 백신을 권고하려면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부작용이 있다면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얼마나 드문지, 어떤 사람에게 더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실제 위험과 백신을 통해 얻는 이익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빌 게이츠의 팬데믹 관련 발언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반드시 그것이 곧 발생한다는 예언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감염병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언젠가 또 다른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위험 관리의 주장에 가깝다.

음모론에 지나치게 몰입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낙관론 역시 좋은 답은 아니다. 미래의 팬데믹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고 의료 시스템과 백신 개발, 치료제, 감염병 감시 체계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접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빌 게이츠가 다음 팬데믹을 정확히 맞히느냐가 아니다. 언젠가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인류가 2020년보다 더 잘 준비되어 있느냐가 진짜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빠른 백신만이 아닐 것이다. 과학에 대한 신뢰, 정부의 투명성, 정확한 정보 전달, 개인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공중보건을 지키는 사회적 합의까지 함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팬데믹이 올지는 아무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감염병이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두려움에 빠지는 것보다 가능성을 인정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