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강 바람은 유난히 차갑게 불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마치 내 안의 공허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 지갑은 여전히 가볍고 내 주변은 공허하게 비어 있다. 몸은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리고, 햄스트링 통증은 단순한 근육의 문제를 넘어 내 삶 전체가 멈춘 듯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이 통증은 단순히 다리의 아픔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경고처럼 다가왔다.

물류 창고에서의 하루는 늘 같다. 박스를 옮기고 또 옮기고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나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처럼 느껴진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땀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공기를 마시며 기계처럼 움직이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다. 동료들의 웃음소리조차 내겐 먼 세계의 소음처럼 들린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나는 그들과 다른 세계에 갇혀 있는 듯하다. 밤이 되면 좁은 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낡은 벽지와 삐걱거리는 침대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아직 이세상에 있는 걸까?” 이 질문은 매일 밤 내 머릿속을 파고들며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내린다.

인생 힘들때
Light
집에 오는길 오늘도 강변을 걸었다.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다. 가로등 불빛은 얼어붙은 강물 위로 길게 드리워졌고 그 빛은 마치 내 삶의 마지막 흔적처럼 흔들리며 사라졌다. 주머니 속에는 오래된 지하철 카드와 몇 장의 영수증뿐. 체크카드로 교통카드를 쓸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된 파란 교통카드에 정이가는건 왜일까. 내 지난 시간을 증명하는 건 낡은 영수증과 느려진 몸뿐이라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물은 나를 끌어당겼다. 11월의 강물은 차갑고 어두운 느낌이지만 그 속에서 희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끝과 시작이 같은 자리에 겹쳐져 있는 듯한 삶과 죽음 사이의 좁은 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창고에서 반복되던 하루 무거운 박스를 옮기던 손과 땀에 젖은 작업복 그리고 통증으로 멈춰버린 다리. 그 모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작은 일상의 소소함도 있었다. 동료의 농담 한마디 점심시간의 따뜻한 국물 편의점에서 산 캔커피 한 잔. 그 사소한 순간들이 내게 속삭였다. “너는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집에와서 피곤하지만 인터넷에서 무료 강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낡은 컴퓨터 화면 속에서 반사되는 빛. 동영상 편집, 사진 편집 서툴렀지만 매일 조금씩 따라 했다. 처음엔 어설펐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작은 흔적들이 내 안에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작은 시도가 내 하루를 바꾸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창고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내게 말했다. “요즘 얼굴이 좀 달라졌네” 나는 웃으며 그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우리도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너는 뭔가 다른 길을 찾고 있구나.” 그 말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작은 인정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또 하루는 집 앞 작은 꽃집을 지나가다가 주인 아주머니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바람이 차갑네요. 따듯하게 입어요” 그 말은 단순한 인사였지만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계절이 지속되는 동시에 반복되며 온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견딜 힘이 생겼다.

여전히 강바람은 차갑게 내 뺨을 스쳤다. 그 차가움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살아 있음을 느꼈다. 죽음의 문턱을 떠올리던 순  오히려 삶의 무게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포기와 시작은 같은 자리에 겹쳐져 있다는 걸 알았다. 강물은 나를 삼키려는 듯 출렁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려는 듯 속삭였다.

나는 매일 아침, 밤 스트레칭을 했다. 햄스트링은 여전히 아팠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강의를 듣고 영상을 편집하고 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창고 동료와 다시 웃음을 나누고 가족에게 짧은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 작은 연결들이 내 삶을 다시 이어주었다.  조금씩 따뜻함을 되찾았다.

쉬는날 나는 강변에 다시 섰다. 이상하게 날이 더 포근했고 바람은 조금 더 따뜻해졌다. 나는 강을 바라보며 아직 끝난 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바람에 흩어지는 기분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절망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따라왔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도전은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의 일기를 쓰며 나는 느낀다. 원래 다이어리에 쓰지만 블로그에 길게 써본다. 내 삶은 여전히 무겁지만 그 무게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발걸음들이 언젠가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임을 믿는다. 어쩌면 그곳은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아직 경험하지 못한 따뜻한 순간들이 기다리는 곳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여전히 추웠지만 내 안에는 여름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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