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에서 꽤 흥미로운 논의가 나왔다. 주인공은 노박 조코비치다. 조코비치가 남자 그랜드슬램 단식의 전통적인 5세트 시스템은 유지하되, 경기 자체의 길이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현재 남자 그랜드슬램 단식은 5세트 중 먼저 3세트를 가져가는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경기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 선수가 팽팽하게 맞붙을 경우 4~5시간은 물론이고 그 이상 경기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조코비치가 제안한 방식은 흥미롭다. 5세트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각 세트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다. 기존에는 한 세트를 6게임으로 구성하지만 이를 4게임으로 줄이고, 게임에서도 듀스 이후 어드밴티지 경쟁을 없애는 노애드(No-Ad) 방식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세트와 게임의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부분을 줄여 전체 경기 시간을 약 2시간 안팎으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 조코비치의 생각이다.
즉,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의 상징과도 같은 5세트 전통 자체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5세트라는 구조는 유지하면서 경기 안쪽의 길이를 줄이자는 접근에 가깝다.
사실 남자 그랜드슬램의 5세트 경기를 두고 선수 혹사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맞붙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매력적이다. 한 경기에서 체력, 집중력, 정신력까지 모두 시험할 수 있고, 4~5시간 동안 이어지는 접전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보기 어려운 테니스만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선수들에게 엄청난 부담이기도 하다. 특히 메이저 대회에서 여러 라운드를 거치며 계속 5세트 경기를 치러야 한다면 누적되는 체력 부담은 상당하다. 경기 하나가 너무 길어지면 다음 경기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스포츠 전체의 흐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구만 봐도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한 변화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진행됐다. 메이저리그는 피치클록을 도입했고, 경기 중 불필요하게 시간이 늘어지는 부분을 줄이기 위한 여러 규칙을 적용했다. 여기에 ABS와 같은 기술 도입까지 더해지면서 야구는 과거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경기 시간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지나치게 길다는 비판을 받았던 야구의 관람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는 야구처럼 경기 시간을 직접 줄이는 방식은 아니지만,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더 빠르게 진행하려는 방향이 강해지고 있다. 중간 휴식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경기 중 플레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흐름 등이 대표적이다. 의외로 축구 역시 현대 스포츠에서 요구하는 '속도감'과 '몰입감'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대 스포츠의 큰 흐름 중 하나는 경기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테니스 역시 이미 대부분의 대회에서 남자 단식이 3세트 경기로 진행된다. 그런데 유독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만 5세트를 고집하고 있다. 그랜드슬램이 테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이고, 최고의 선수들이 가장 큰 무대에서 긴 승부를 펼친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코비치의 제안은 상당히 미묘하다.
그랜드슬램의 상징인 5세트 전통은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경기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통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현대적인 방식으로 조정하자는 접근이다.
물론 반응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테니스 팬이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히 많다.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의 5세트는 오랜 전통이자 테니스만의 독특한 매력인데, 게임 수까지 줄이고 노애드까지 적용하면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그랜드슬램 테니스와 너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반면 벤 셸턴처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선수도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긴 경기를 줄이고 체력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디어일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이런 제안을 한 사람이 조코비치라는 점이다.
조코비치는 테니스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체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가진 선수다. 긴 랠리와 긴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왔고, 5세트 승부에서도 엄청난 경쟁력을 보여준 선수다. 그런 선수가 오히려 "이제는 경기를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실제로 이 규칙이 그랜드슬램에 도입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랜드슬램은 단순한 테니스 대회가 아니라 오랜 전통과 역사, 상징성을 가진 대회이기 때문에 규칙을 크게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논쟁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의 5세트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최고의 선수들이 한 경기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경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과 정신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극적인 장면도 많이 나온다. 테니스 팬이라면 이런 긴 승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한 경기가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현대 스포츠가 점점 더 빠른 템포와 높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테니스 역시 언젠가는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답은 무엇일까?
5세트를 없애는 것일까, 아니면 조코비치처럼 5세트라는 전통은 유지하면서 각 세트의 길이를 줄이는 것일까.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에 가깝지만, 적어도 테니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진 것은 분명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통과 현대화 사이에서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의 5세트 전통은 지키면서도, 선수들의 혹사와 지나치게 긴 경기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 규칙이 도입될지는 모르지만, 테니스 역시 다른 스포츠처럼 경기의 속도와 관람 경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논의가 이어질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